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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관 칠의사

출생지 / -

석주관 칠의사 묘(사적 제106호)
칠의사란 정유재란때 석주관에서 왜구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7명의 순국열사를 지칭한다. 1597년(선조 30년) 7월 왜장 고니시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 8월 6일에는 섬진강을 거쳐 석주관에 도달하였다. 당시 석주성을 지키고 있던 구례현감 이원춘은 왜구와의 교전끝에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 남원으로 철수함에 따라 왜적은 7일 구례지방에 들어와 온갖 약탈과 살육을 일삼고 백성들을 괴롭혔고 석주성은 왜구의 보급로가 되었다.

구례의 선비 왕득인은 의병을 모집하여 석주성으로 나아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였으며 왕의성을 비롯한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등은 구례 화정리에 주둔하고 있던 조경남과 합세하여 악양 방면에서 진군해 오던 왜구를 맞아 연곡 부근에서 급습, 마침내 왜구 50여명을 사살하고 아군포로 200여명을 구하는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조경남이 타 지역 의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떠나자 6의사는 석주성의 방어를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화엄사에 격문을 보내 승병 153명과 군량미 103석을 지원 받았다. 이후 6의사는 또 한 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거듭되는 패전에 분해한 왜구는 대군을 이끌고 석주성을 공격,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대 왕의성을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였다. 이들의 충절을 기려 후일 충효사에 배향되었다가 7의사 위패는 석주관 7의사단에 옮겨져 모셔졌다. 7의사중 왕득인(王得仁)은 호가 남전(藍田)이며 본관은 개성으로 정유재란으로 구례가 적의 수중에 넘어 갔을때 석주관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왜구와 싸우다 순절했다.

왕의성(王義成)은 왕득인의 아들로 호는 서강(西崗)이다. 부친이 석주관 전투에서 순절하자 분연히 일어나 부친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한호성 등과 더불어 왜구에 대항하였으나 모두 순절하고 자신만이 살아남자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산속에 숨어 살았다.

이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북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인조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충청도 청주에서 귀향하여 두문불출하며 여생을 보냈다.

1805년(순조4년) 나라에서는 7의사에게 각각 관리를 추증하였다. 이현감과 일곱 의사들의 초혼총이 모셔져 있고 현재 칠의사 묘에서 좀더 위로 올라가면 칠의사 추념비와 무명용사 위패비(승병 153명, 일반의병 3,500명)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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